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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으로부터 바람 - 1 post

먼 곳으로부터 바람

먼 곳으로부터 바람    이제니


빨강과 파랑이 섞이는 풍경을 보고 있었지.

밤으로 만든 의자에 앉아서.


너는 걸어 다니는 시.

울면서. 잠들면서. 노래하면서.


순간의 순간에서 순간의 순간으로

리듬으로 시작해서 리듬으로 끝나는


만난 적 없는 색깔이 섞이는 밤이다.

너에 대해 속삭이고 속삭이는 밤이다.


하나의 몸에서 나뉜 두 개의 영혼

반짝이면서 하얗게 사라지는 전날의 거울

거울의 뒤편에서 거울의 뒤편으로

머나먼 곳으로부터 오는 바람 속으로


웃음, 나는 울지

울음, 나는 웃지


언젠가 앉아 있던 잿빛의 계단

두 개에서 세 개로 증식하는 너의 얼굴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우린 이미 만났지요.


나무의 흔들림을 바라보면서. 어제의 믿음을 버리면서. 흔들리는 그림자의 윤곽을 다시 지우면서.


나는 울지, 그 대목에서

나는 웃지, 그 거리에서


멀리서 둥둥 북소리 들려온다. 숲은 고요하고 나무는 자란다. 하늘은 맑고 구름은 사라진다. 너의 구두는 반짝이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길 위에서. 천천히. 점점 빠르게 내달리면서.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지. 말없이. 손나팔을 불듯 두 손을 흔들면서. 끝없이 이어지는 춤을 추면서. 머나먼 반도의 끝자락을 떠도는 이름 없는 유랑 악단처럼. 멈추면 사무칠까 봐 더 더 걸었지. 뒤처진 쪽을 슬쩍슬쩍 바라보면서. 서로가 서로를 잘 따라오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이면서. 언제나. 언제나 그렇게 걸었지. 언제나 그렇게 걸어왔지. 춥고 어두운 길에선 더더욱 더.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이 사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람이 불고 있었지. 숲은 어디에도 없었어. 불과 꽃. 재와 그림자. 없는 들판과 없는 언덕. 물결처럼 늘어나는 장방형의 모서리들. 별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지. 어떤 노래가 꿈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었지.


내가 가진 몇 개의 단어

내가 말할 수 있는 몇개의 사물


하늘엔 두 겹의 구름이 층층이 부풀어 오르고

나의 늙고 오래된 개는 말이 없다

눈멀고 귀 멀어 자신의 고독 속에서


사는 것이 죽는 것이다.

죽는 것이 사는 것이다.


순간의 순간에서 순간의 순간으로

리듬으로 시작해서 리듬으로 끝나는


나는 울지, 그 계단에서

나는 웃지, 그 어둠으로


구름이 다가온다. 빛이 사라진다.

먼 곳으로부터 바람. 먼 곳으로부터 오는 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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