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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체 - 1 post

인간론

인간론    이이체


앵무조개 껍데기를 모아놓은 하얀 상자
이 형벌은 예지몽으로부터 이어진다
죄수들은 죄짓지 않고도 삶을 수감당했다

가장 창백한 불꽃과 가장 가까운 물결이 사랑이다

곤충의 정교한 눈
이 눈에는 더 많은 눈들이 있는데,
너는 다 헤아릴 수 있겠니

기적 소리가 잦아들 때마다 안주하게 되던
죄악과의 재회

천식에 걸린 바늘의 끄트머리로부터 서서히......

어떻게 젖어야 할까, 눈물로 싸인 눈동자들
서로 알지 못하는 노래
풀과 나무를 갖지 못하는 불임(不姙)의 모래를
잊지 못하리라
유년의 꽃반지, 시들 줄 알면서도

우리는 뭍에 갇힌 심해어야
소라 껍데기가 매일 우리를 부르지

사자(死者)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밀월이 온다
호박 등불이 영롱하게 빛을 반주하고
몸이 갈기갈기 찢긴 바다표범이
꾸역꾸역 울고 있었다
눈발은 자주 흩어졌다

무엇인가 더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끝이 없는 것이다

출생하면서부터 시간의 포로가 된 채로 그렇게

방패연을 날리다가 하늘에 흘려버리고는
양피지에 기록된 낡은 모계(母系)의 신화를 믿고,
믿고, 또 믿으면서, 연거푸 울고, 연거푸 울면서

그대 인간이라는 껍데기 안에서
새우잠 자는 원죄(原罪)여,
끊어지지 않는 탯줄처럼 이어질 테지

입을 벌린 채 내장을 흘리고 누운 통조림들

이미 다 끝나 있는 일을 계속하려 하는 중이다

인생에서 탈옥하지 못한 실패자들

떼로 죽어 널브러져 있는 갈매기 시체들 주위,
갈매기들이 모여든다
굶주린 부리를 치켜들고

모든 시인들은 표절당한 요절 때문에 격앙되어
울화병으로 곪고 썩는 것이다

우리가 함구해야 할 인과율에는
알면서도 외면해야 하는 모순이 있었다

어차피 늙어간다는 것은 아물어가는 일이다,
육체란 이미 상처 그 자체이므로

죽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인간의 정적

소풍 가자 잘못된 삶들아
우리 나가서 모두
죽자
죽자
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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