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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호기 - 2 post

손가락이 뜨겁다

손가락이 뜨겁다    채호기


하늘의 별은 뜨겁다. 밤은 차갑다. 벌거벗은 네 등은 차갑다. 내 손은 뜨겁다. 비가 오고 들판에서 피어오르는 뿌연 수증기. 내 손가락들이 수증기에 갇힌다. 물렁물렁해진 진흙에 발이 빠지듯 네 등을 산책하는 손가락들이 빠져든다. 네 등에 손톱 끝으로 고랑을 내며 글씨를 쓴다. 씨앗을 뿌린다.


 흙이 글자를 끌어당긴다. 네 등에 묻힌 글자에서 싹이 돋고, 들꽃들이 피어났다. 밤은 뜨겁다. 꽃은 뜨겁다. 꽃의 향기는 시가 되어 손가락 끝에 만져진다. 네 등에 보이지 않는 무엇이 영원히 새겨졌다. 별은 뜨겁다. 손가락도 뜨겁다.

사랑에 취한 당신

사랑에 취한 당신    채호기


당신의 피가 돌아 붉은

장미여! 장미 꽃잎에 안겨

당신의 목덜미에 이빨을 박는

벌이여! 나비여!


어느 햇살 나른한 오후

사랑에 취한 당신은

시집을 열었다. 갇혀 있던

시어들이 휘발하여 당신의 코를

간질이고 당신은 눈을 감는다.

당신을 사로잡는 그의 몽롱한 향취.


리듬의 팔이 당신을 끌어당기고

당신은 펼친 시집으로 가슴을 덮는다.

당신이 읽던 시행의 손가락들이

당신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코와 인중, 입술을 간질인다.


사랑을 상징하는 하나의 문장이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당신이

받아들인 한 단어가 당신의

하얀 목덜미에 박힌다.


당신의 피를 빨아 더욱 붉은

입술 같은 장미. 구불구불한

장미 정원에 사랑에 감염된

당신의 무성한 꿈들이 오후의

짙은 그늘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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