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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 2 post

야행 中

야행    편혜영


통증은 그녀에게 유일하게 남은 것이었다.


그녀는 갑작스러운 남편의 소멸을 지켜보며 죽음에 대해서는 비탄할 필요도 없고 어떤 애원도 소용없으며 증오를 품어서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저 그렇게 될 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는 방 안 깊숙이 들어온 어둠의 농도를 살폈다. 일생을 통틀어 이만번도 넘게 검은 밤을 맞았을 텐데, 끊임없이 밤이 지나갔을 텐데, 어둠의 질감을 분간하고 그로써 시간을 짐작할 수 없다는 것에 조금 당황했다.


밤과 밤이 이만번쯤 지나가는 것처럼 긴 시간이었다.


통증이 오는 주기나 횟수는 예측할 수 없었다. 강도가 매번 짐작 이상이라는 것 말고는 통증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선의 법칙 中

선의 법칙    편혜영


지나고 보니 다른 시절과 마찬가지로 그때에도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동시에 일어났을 뿐이다. 그때는 모두 나쁜 일인 줄 알았다. 그쁘고 좋은 일은 소소하게 흘러갔으나 나쁜 일은 내내 남아서였다.


느닷없이 귓속에서 커다란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몸에서 나는 소리였다. 신기정은 그 불쾌한 소리에만 집중했다. 윤세오는 그런 소리와 문장을 잃었다. 조건 없는 애정, 묵묵하지만 다정한 응시, 보호자로서의 책무를 가지고 지켜보는 엄격한 표정을 잃었다. 밤이 꾸물거리며 흘러갔다. 두껍고 누런 옷을 입은 엄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불편할 정도로 빳빳해 보이는 옷의 질감과 화가 난 듯 굳은 얼굴 때문에 윤세오는 겁게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엄마는 움직이지 않았다. 경찰은 바빴다. 동생의 일에만 매달리지 않았다. 부검 결과를 기다린 후에 수사 방향을 결정할 것이다. 신기정은 동생의 죽음이 경찰에게는 무수한 죽음 중 하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윤세오는 눈을 감았다. 세상이 차차 단단한 벽이 되었다. 어둡고 암담하다는 게 아니었다. 벽으로 둘러싸여 안전하다는 뜻이었다. 아이에게는 운을 잘 타고 태어난 사람 특유의 자신감과 오만함이 있었다. 부유한 양친이 있고 좋은 집이 있고 원하면 얼마든지 새 물건을 살 수 있고 스스로 장래를 만들기 위해 안달복달하지 않아도 되는 종류의 운 말이다. "이런 일은 다 절대로 그럴 리 없는 사람들이 해요. (...) 죄다 그럴 것 같은 사람들이면 무서워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사람은요, 성추행할 리 없는데 그렇게 하고요, 사기칠 리 없는데 사기칩니다. 물론 자살할 리 없는데 자살하고요." 비가 오려는지 습기 찬 바람이 불어 재가 났았다. 상자를 들고 검은 집을 천천히 돌아봤다. 이곳에는 지난 시간이 있었다. 그것들은 모두 불에 탔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많은 날이 여기에 있었다. 그것들도 불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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