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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과 칸나꽃

칼과 칸나꽃    최정례


너는 칼자루를 쥐었고 
그래 나는 재빨리 목을 들이민다. 
칼자루를 쥔 것은 내가 아닌 너이므로 
휘두르는 칼날을 바라봐야 하는 것은 
네가 아닌 나이므로 

너와 나 이야기의 끝장에 마침 
막 지고 있는 칸나꽃이 있다 

문을 걸어 잠그고 
슬퍼하자 실컷 
첫날은 슬프고 
둘째 날도 슬프고 
셋째 날 또한 슬플 테지만 
슬픔의 첫째 날이 슬픔의 둘째 날에게 가 무너지고 
슬픔의 둘째 날이 슬픔의 셋째 날에게 가 무너지고 
슬픔의 셋째 날이 다시 쓰러지는 걸 
슬픔의 넷째 날이 되어 바라보자 

상갓집의 국숫발은 불어터지고 
화투장의 사슴은 뛴다 
울던 사람은 울음을 멈추고 
국숫발을 빤다 

오래 가지 못하는 슬픔을 위하여 
끝까지 쓰러지자 
슬픔이 칸나꽃에게로 가 
무너지는 걸 바라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