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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규 - 3 post

허밍, 허밍

허밍, 허밍    이은규


 종종 구름을 눈에 담는 습관, 당신의 폐활량이 천천히 부풀 때 그날의 공기를 부러워한 적 있다 구름을 가리키며 바람의 춤이라고 말하는 당신의 허밍은 입술에 기대는 음악일까, 기대지 않는 음악일까


 바람의 춤이 보인다면 그건 구름의 몸을 빌렸거나 폐활량이 푸른 여름잎의 소관일 것, 구름은 바람으로 흐르고 바람은 여름잎으로 들리니까


 언젠가 고원의 사라진 호수에 대해 이야기 나눴지 수면을 맴돌던 그때의 구름은 지금 어디 있을까 가장 낮은 하늘을 흐르고 있을 호수 저편, 깃털무늬구름이거나 물결무늬구름


 당신은 잠시 구름사전 속 이름들을 덮는다 구름과 노닐기에 알맞은 바람이므로, 구름의 후렴은 음악이다 마지막 소절이 첫 소절로 흐르는 허밍, 허밍


 사라진 호수 저편

 팔랑, 수면을 깨뜨리는 나비 한 점도 좋을 오후

발끝의 고해성사

발끝의 고해성사    이은규


발끝을 세워 창가에 서면

고해성사가 시작된다, 구름을 향한

이인칭 문장이 흐르고


꽃잎이 귀띔해준 룰

초속 3센티미터로 지는 그 이름은 비밀에 부치기로 한다

말들은 공기의 미동에 따라 알맞게

바람에게서 귀동냥한 표현이거나 출처를 잊어버린 인용의 일부이기도 하다


오후를 날아가는

저 새의 모이주머니에는 잘게 찢긴 지도가 들어 있을까, 아니면 몇 알의 곡식

내 주머니를 채우는 건 나의 지론보다는 누군가의 개론


모르게 알게 지은 죄를 구름에게만 속삭일 때 도무지 어쩔 수 없다는 당신의 고해를 되풀이하는 셈

죄를 보이고 싶다, 발끝까지 추운


귀를 자르겠다는 다짐을 실행하기 좋은 시절

나라는 이인칭으로 죄를 속삭일 때 구름은 끝내 귀를 막을까 창을 부술까

당신이 들려줄 문장은 마지막까지 완성되어 있다, 방점까지도


마치지지 못한 고해는 잠꼬대로 이어지고

인칭을 잃어버린 주어만 말문이 막힌다


성사되지 않을 고해의 밤

이렇게 불안한 발끝으로

놓치다, 봄날

놓치다, 봄날    이은규


저만치 나비 난다

귓바퀴에 봄을 환기시키는 운율로


흰 날개에

왜 기생나비라는 이름이 주어졌을까

색기(色氣) 없는 나비는 살아서 죽은 나비

모든 색을 날려 보낸 날개가 푸르게 희다

잡힐 듯 잡힐 듯, 읽히지 않는 나비의 문장 위로

먼 곳의 네 전언이 거기 그렇게 일렁인다

앵초꽃이 앵초앵초 배후로 환하다

바람이 수놓은 습기에

흰 피가 흐르는 나비 날개가 젖는다

젖은 날개의 수면에 햇살처럼 비치는 네 얼굴

살아서 죽은 날들이 잠시 잊힌다


봄날 나비를 쫓는 일이란

내 기다림의 일처럼 네게 닿는 순간 꿈이다

꿈보다 좋은 생시가 기억으로 남는 순간

그 시간은 살아서 죽은 나날들

바람이 앵초 꽃잎에 앉아

찰랑, 허공을 깨뜨린다

기록되지 않을 나비의 문장에 오래 귀 기울인다

꼭 한 뼘씩 손을 벗어나는 나비처럼

꼭 한 뼘이 모자라 닿지 못하는 곳에 네가 있다


어느 날 저 나비가

허공 무덤으로 스밀 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봄날, 기다리는 안부는 언제나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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